커피가 식기 전에
가와구치 도시카즈 지음 / 김나랑 옮김
어느 찻집에는 도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특정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원하는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설이다.
다만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아주 성가신 규칙이 있었다.
하나. 과거로 돌아가도 이 찻집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둘. 과거로 돌아가서 어떠한 노력을 할지언정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셋. 과거로 돌아가는 자리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다.
그 손님이 자리를 비켜야만 앉을 수 있다.
넷. 과거로 돌아가도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 없다.
다섯.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커피를 잔에 따른 후 그 커피가 식을 때까지에 한한다.
성가신 규칙은 이외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전설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의 발길이 이어진다.
찻집의 이름은 푸니쿨리 푸니쿨라.
당신이라면 이런 숱한 규칙들을 듣고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나요?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이 책을, 아니 정확히는 이 책의 제목을 알게된 건 OTT의 영화 목록에서였다. '커피가 식기 전에'라는 제목에 이끌려 나중에 볼 생각으로 '찜'을 해두었고, 그대로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동일한 제목의 책을 봤다. 원작이 소설이었구나.
그렇게 읽게 된 이야기.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면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인생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에서는 과거로 돌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심지어 성가신 규칙 중 하나로 과거에서 어떤 행동을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정해져있다.
과거로 돌아가서도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와야 하니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짧고, 심지어 자리를 벗어날 수도 없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면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들을 굉장히 까다로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이들, 그리고 그들이 과거로 돌아가서 하는 행동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뉘는데 결혼을 생각하던 애인과 헤어진 여자, 치매에 걸린 남자와 부인, 가출한 언니와 먹성 좋은 여동생, 그리로 찻집에서 일하는 임산부의 이야기.
이야기의 전개방식도, 이야기의 여운도 참 일본 소설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자극적인 드라마와 소설들처럼 과거로 돌아가 엄청난 복수와 인생 역전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여운이 많이 남는 게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들었다.